이몽 소개
편성 : MBC 2019.05.04 ~ 2019.07.13 (40부작)
최고시청률 : 2화 7.1%
출연 : 이요원, 유지태, 임주환, 남규리 외
기획의도
1919년,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두 사건, '3.1 운동'과 '임시정부수립' 그리고, 무장독립투쟁의 최선봉이었던 비밀결사 ' 의열단' 결성도 같은 해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다가올 2019년은 모든 사건 이후 딱 100년이 되는 해이다. 강산이 열 번이 바뀌는 동안 식민 통치, 6.25 전쟁, 남북분단, 독재정권, 군사 쿠데타, 민주화 그리고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촛불혁명, 대통령 탄핵 등......
타민족과 비교되는 고된 역사이지만 오늘도 여전히 남과 북은 분단되어있고 정치권은 분열돼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등 외세 열강의 힘겨루기는 백 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이야기는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그림자로 살다 간 그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 기억해야 할 역사를 극 중 인물들과 함께 걸으며, 때론 달리며, 쓰러지며, 다시 일어서 목격하고 경험하는 여정이 끝나는 순간, 세기의 한반도를 살아가는 현명한 지혜가 조금이라도 뇌리에 남겨지길 바라본다.
등장인물
이영진 (이요원) : 외과의사.
부모를 잃고 폐허가 된 마을에 홀로 남겨졌지만 일본군 군의관 ‘히로시’ 에게 입양 돼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아버지 히로시의 권유로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던 그녀는 조선인 최초의 여성 외과의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 지혜병원 외과의로 일한다. 어느 날 본의 아니게 병원에서 폭발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당대의 동서양의 교수들과 의학도들이 총망라된 명문인 상하이교통대학(上海交通大學) 의학학원으로 유학을 가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돌아와, 총독부의원에서 의사로 일하게 된다. 호기심도 많으며 떠오른 생각을 바로 뱉어내는 엉뚱한 성격이다.
김원봉 (유지태) : 의열단 단장.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앉아서 쪽잠을 자고 한 곳에 2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착한, 도덕적 과는 멀게 행동한다.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의열단의 부하들을 몰아붙인다.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식에 반감을 갖고 무장투쟁을 계획한다. 불 같은 가슴, 불 같은 행동력으로 거침없으며 신출귀몰하다. 차가운 영진과 대치점에 있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안다. 이념에 대한 다른 꿈을 꾸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영진을 적진 깊숙한 곳에 보낸 자신을 책망한다. 그의 진짜 이름은 ‘김원봉’이며 의열단단장이자 향후 조선의용대 대장으로 중일전쟁에 참전한다. 의열단 단장. 의백으로 불린다. 의백은 맏형을 뜻하며 그의 직책이기도 하다.
후쿠다 (임주환) : 조선총독부 법무국 검사.
후쿠다 사부로. 엘리트 집안 출신으로 상류층의 기품과 매너를 겸비한 젠틀맨. 선배 검사들을 따라 드나드는 기방에서 조차 젊은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조선인과 일본인에 대한 차별에도 반대하며, 연상인 영진을 이성으로서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 고등계 검사로서 독립운동인사들을 담당하지만 공정하려 애쓴다. 일본대장 야마모토의 장녀와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부모 뜻을 거스르고 영진을 향해 마음을 굳힌다. 영진에게 있어선 원봉과 정 반대의 남자로서 여자로서의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게 만든다.
미키 (남규리) : 경성구락부 가수.
섹시한 매력으로 경성구락부 내 젊은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몰락한 일본 정치가문의 외동딸이라는 소문이 있다. 미국에서 공부했고 서양문물에 밝으며 재즈 보컬 실력은 일품. 초반 영진을 대하던 깔보고 무시하던 태도는 방어기제였고, 이후 영진의 진심을 느끼고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된다. 내심 좋아하던 후쿠다의 시선이 자꾸 영진을 향하면서 마음속 갈등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드라마 속 역사
일제강점기 (1910 ~ 1945) :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부터 해방된 1945년까지의 민족 수난기이다. 우리의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 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시기.
제1기(무단통치·헌병경찰통치) 1910년~1919년 - 대개 경술국치부터 1919년까지 보는데, 민족자결주의 대두 및 3.1 운동의 영향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며 식민통치 이념이 달라진 것을 기점으로 한다. 경제적으론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이 실시되었다. 조선인을 대상으로 태형을 실시하는 태형령이 공표되었고, 일본 제국 육군 소속 헌병들이 치안 업무에 투입되는 헌병경찰제도가 운영되었으며, 교원(학교 선생님)들이 칼을 차고 다녔다.
제2기(문화통치·민족분열통치) 1920년~1930년 - 제1기가 막을 내린 직후부터 세계 대공황이 발발한 1929년까지를 일반적으로 보며, 흔히 '문화통치기'라고 줄여서 부른다. 경제적으론 산미증식계획이 실시되었다. 헌병이 보통경찰로 바뀌었고, 언론·출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회사령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되었다.
제3기(황국신민화통치·민족말살통치) 1931년~1937년/1938년~1945년 - 만주사변이 발발한 1931년부터 제3기 전기로 본다.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의 영향으로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제3기 후기로 본다.
독립운동
1. 1910년대 : 910년대에는 일제의 무단 통치 때문에 국내에서는 주로 비밀 결사 형태의 독립운동이 전개됐다. 대성학교는 자립단을, 숭의여학교에서는 송죽회를 조직했다. 의병 활동은 크게 위축되어 서북 지방 일부에서 1915년까지 전개되다가 이후 만주로 이동하여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힘들어지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 일대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1919년에는 한국 독립운동 역사 최대의 독립운동인 3.1 운동이 일어난다. 3.1 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 통합운동이 일어나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게 됐다.
2. 1920년대 : 1920년대 독립운동의 특징이라면 사회주의가 한반도 전역에 급속하게 전파되어 독립운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확산으로 인해 독립운동 노선이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화되었다. 이때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되어서 학생 운동과 농민 및 노동 운동 등을 주도하였다.
3. 1930년대 ~ 광복직전 : 이 시기 일제는 민족말살통치를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독립운동가들은 민족 문화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고 민족문화수호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선어학회가 1931년 창립되어 우리말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언론사들도 조선어 교육에 힘쓰기 시작했다. 역사학자들 또한 한국사 연구를 통해 민족 문화를 수호하려 했다. 또한 예술과 문학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국외에서는 무장투쟁 또한 활발히 전개됐다. 이 시기의 국외 무장투쟁은 주로 만주와 중국 관내에서 이루어졌다.
이몽 속 독립운동가
1. 박에스더 (1877-1910) : 대한민국 최초의 여의사,
2. 지청천 (1888-1957) :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배재학당과 한국무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 사관학교 졸업,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서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했다.
3. 신채호 (1880-1936) : 역사가, 언론인.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며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 조선상고사 등의 저서가 남아있다.
4. 지복영 (1920-2007) : 지정천장군의 둘째 딸. 한국광복군 및 임시정부에서 활동, 광복군 제3지대 소령.
5. 김구 (1876-1949) :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부국장,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을 역임.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했다.
6. 이태준 (1883-1921) : 몽골의 슈바이처라고도 불렸으며,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몽골에서의 의료활동과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상하이 임정의 자금조달 등의 독립운동 중 러시아 백위파의 운게른 부대에 의해 피살됐다.
7. 이동휘 (1873-1935)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역임.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러시아정부로부터 200만 루블의 지원금을 약속받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8. 윤세주 (1901-1942) : 본명 윤소룡. 밀양에서 태어나 김원봉과 죽마고우로 의열단 창설에 참여하고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 후일 조선의용군지대를 이끌고 태행산에서 일본군 40만 명과 결전 끝에 숨졌다.
9. 한인애국단 : 1931년 상하이 임시정부 국무령 김구가 조직한 항일 비밀단체. 일본요인암살 등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으로 안공근, 윤봉길, 이봉창 등이 소속됐다.
10. 오광심 (1910-1976) : 조선혁명당유격대 지하연락공작원으로 활동.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광복군 제3지대 간부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1. 이상룡 (1858-1932) : 이회영, 이시영과 함께 간도에서 독립군기지개척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였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하였다.
12. 이준형 (1875-1942) : 한족회와 서로군정서 정의부 설립을 주도. 아버지 이상룡 순국 후 고향 안동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3. 정정화 (1900-1991) : 상하이 임시정부의 암살림을 맡아하였으며 독립자금을 잘하는 밀사로 활약하였다. 김구로부터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칭송을 받았다.
14. 박차정 (1910-1944) : 의열단으로 활약하다가 조선의용대 부녀 단장을 맡아 항일무장투쟁에 주력하였다. 장쑤성쿤룬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부산을 입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광복을 한해 앞둔 1944년 사망하였습니다,
15. 이봉창 (1901-1932) :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일왕 히로히토의 마차 행렬에 수류탄을 던지고 현장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연행돼 같은 해 10월 사형당했다.
16. 안공근 (1889-1939) : 안중근의 친동생.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관이자 교육자 김구와 함께 한인애국단을 조직했으며 한인애국단의 재정을 담당했다.
17. 신언준 (1904-1938) : 동아일보 상하이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정의를 위한 거사활동을 홍보,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18. 백정기 (1896-1934) : 흑색공포단이란 조직을 만들어 중국 내 친일세력과 밀고자들을 암살하고 일본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항일운동을 하였다.
19. 김홍일 (1898-1980) : 상해 병공창 주임으로 근무하며 이봉창, 윤봉길에게 폭탄을 제공하였다. 이후에도 한국광복군참모장으로 활동하며, 김구, 지청천을 도와 미국 oss와 합작하여 국내 진공작전인 독수리작전을 계획하였다.
20. 윤봉길 (1908-1932) : 상해 홍구공원에서 수통폭탄을 투척했다. 중국의 장개석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라고 격찬하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로 약속한다.
21. 안창호 (1878-1938) :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임시정부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였다. 윤봉길의 홍구공원 거사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22. 이유필 (1885-1945) : 임시정부 국문원을 역임하고 교민단장 겸 인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윤봉길 거사 후 체포 되어 3년형을 받았다.
23. 마자르 (미상) : 한국독립운동사에 북경까지 의열단을 찾아와 고성능 폭탄을 제공한 헝가리 협력자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자르라고 불렸단 것 외에는 진짜 헝가리인 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이 힘든 인물이다.
24. 김상옥 (1890-1923) :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그 후 10일 동안 피신하다 같은 달 2일 천여 명에 가까운 경찰들과 총격전, 추격전을 벙이다가 10발의 총을 맞고 최후에 남은 마지막 총알로 자결하였다.